잘 되면,

2012. 8. 10. 10:50 from 없는, 글.

잘 되면, 이라고 생각했다. 될 일이라면 될테지. 라고도 생각했다. 생각이란 놈이 참 우습구나. 하고 그는 또 생각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는 또 잊고 잊으려고 노력했다. 단 한 번도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의 이십오년의 인생에서 행운이라 불리는 공자는 별로 없었으니까. 

전역을 한지가 고작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군대에서 배운건 그 무엇도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먹고, 자고, 싸는 행위를 하기위해서는 그만한 환경이 필요한데, 군대에서는 그 모든 걸 스스로 만들고 관리한다. 사회에 있을 땐 돈 몇푼이면 해결 될 일이 내 손을 거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에게 있어 꽤 큰 충격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유지할라치면 또 얼마나 많은 것이 내 손을 거쳐야만 하는가. 그래서 용접이면 용접, 목공이면 목공, 우리나라 남자들은 군대만 갔다오면 만능이 되나보다. 그래, 씨발. 공짜가 어딨어. 만들어내야지.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며 뇌까렸다. 

지금 그는 얼마 전 솔깃한 제의를 받고 들떠버린 마음을 다잡고 있는 중이다. 복학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 그 제의는 둘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 솔깃해서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현상을 망쳐버릴까 두려웠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로 복학할 등록금을 모으고 있는 그는 자취하랴 적금부으랴 아무래도 빠뜻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편의점 일이라는게 나름 안정적이기도 했고,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잠깐씩 졸거나 책도 볼 수 있어 복학을 해도 어느 정도 벌이는 가능할 것이라는 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주말 야간 파트로 들어온 5살 연상의 남자가 자기 일을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5살 연상의 남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2~3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웬만한 아르바이트 월급의 두배 이상을 벌 수 있다. 5살 연상의 남자가 말하는 웬만한 아르바이트라는게 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포함된 것이라면 210만원 정도를 벌 수 있을 거라는 건데, 세상에 무슨 일이 하루에 2~3시만 일하고 그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5살 연상의 말에 놀라움과 감격과 감동의 제스쳐를 보이며 생각했다. 뒤가 상당히 구린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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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soulcat

 

「난 죽어야 . 한동안 죽어야 이유를 찾아봤는데 도무지 찾겠어. 내가 못난 인간인 알았지만 정도인 줄은 몰랐어. 정상적인 인간이 본인이 죽어야 이유 하나 없다는 말이 ? 아무튼 그래서 죽어야겠어. 짐도 꾸렸고, 유서로 수첩도 챙겼고, 고양이도 옆집에 맡겼어. 한달 뒤에 데리러 가겠다는 약속은 지키겠지만 , 들면 매몰차게 내버리진 않겠지. 굶어죽는 내키지 않아서 지갑도 챙겼고, 엄마, 아부지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는 말도 했어. 눈치가 있으시다면 생전 하던 소리를 했으니 웬만큼 각오는 하시겠지. 친구들한테도 정말 하고 싶던 얘기 했고. 얼굴이 , 싸가지가 없어, 농담은 주일날 2 예배보다 지루해-. 그것들한테 어찌나 욕을 먹었는지 생각보다 오래 살까봐 불안하기 하지만, 속은 시원하네. 사랑한다 한심한 인생들아 꾸역꾸역 살아라-  여러 가지로 완벽해, 이제야 적성을 찾은 느낌이랄까-. 조급할 필요도 없어, 죽어야 이유는 이제부터 하나씩 찾아가면 . 조만간 수첩이 채워질 테고, 즈음엔 뿌듯한 마음으로 뒈지는 거지. 유서는안네의 일기이후 최고의 사망직전 수양록이 될테니까. 사실 지지배는 죽을 생각도 없었잖아. 유태인도 아니고-. 암튼 마지막 여행을 위해 터미널에 왔어. 영화에서 보니까 다들 그러더라고. 근데 웬걸, 오늘 일진이 좋은건지- 표를 사려는데 매표소 직원이한시반 차요.’ 하는 거야.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이지. 이름은 한시반이 아닌데? 이름은 한시반이니? 도살장 끌려가는 도야지 새끼도 이름에 알파벳은 들어간다구. A+....B+.... 이딴 - 암튼 덕분에 수첩에 줄은 채웠지. ‘ 년은 숫자 취급한다. 숫자로 사느니 죽어야지.’ 은혜는 다음 생에 갚겠소-, 결국 만원도 되는 돈으로 죽을 이유 하나를 셈인데-.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 없는 것들은 지가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나가기 쉽상이라니까? 이건 죽을 때가 되니까 운빨이 붙는구나.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은 누군가 내게 시비를 걸어줄 것만 같다. ‘아니, 딱히 죽을 이유도 없으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죽으려고 안달이야?’ 하고 말이지. 그럼 눈을 감고 속으로 대답하겠지. ‘죽어야 간곡한 이유 하나 없는 인간이 살아야 간곡한 이유라고 있을까?’

 

#. 2 - narapark

간절하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생각해보니 삶이 간절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도 잘 모르겠더라. 하이데거였던가, 왜 던져놓고 지랄이야라며 신을 비하했었지. 그러면서 욕망의 산물이니 어쩌니 되도 않는 소리를 늘어뒀던가. 미친놈, 네놈 덕분에 내가 이 삶에서 얼마나 추악한 성적 노리개로 전락했는지 아냐?. 다 네 잘난 입 때문에, 뭐 그래 그건 그렇다치고. 삼십 분 동안 뭐하지, 담배나 한대 피러가지 뭐, 근데 이 터미널은 관리도 안 하나, 뭐 이리 더러워, 햇볕은 참 좋은데 건물이 눅눅한 게 무슨 씹다 뱉은 시금치 조각 같네. 하늘이 새파랗다. 역시 봄은 봄인가 싶은데 왠 바람이 한 겨울 바람이야 조금 더 있다가 출발할걸 그랬나, 얼어 죽는 건 별론 데.. 그래, 삶이 간절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런 생각은 할 수 있는  거 같아, 뭔가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쌓여갈수록 난 그것에 집착을 하게 되고 내 삶은 그것과 연결되는 거지, 그래서 그걸 잃으면 마치 내 삶마저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삶 자체에는 별 의미가 없는데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들이 문제인 거지. 내 삶엔 그런 게 뭐가 있을까. 그래, 고양이가 그랬고, .. 너도 그랬고, 담배? ? 아끼던 책? 뭐 나열하라면 오만가지 다 나오겠구나, 그러니까 결국엔 삶에 연결된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면 그 삶의 의미는 사라지고 간절할 이유도 없어지는 거지. 근데, 그딴 것들이, 삶이 간절할 수 있는 이유라고? 좀 웃기지 않아? 뭐 아무튼, 죽어야 할 이유는 어떨까? 단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해서 죽어야 할 이유가 떠오를 리는 없잖아? 아까 그 매표원이 날 숫자로 불렀던 것처럼, 내 존재가치를 말살시키는 것들이 있으면 되. ‘누구세요?’라고 묻는 게 아니라 너 뭐야?’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지.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게 되는 거.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는 정말 많아, 백화점에 가봐, 거기 가면 주차장에서 차들에다 대고 90도로 인사하는 얘들 있잖아, 말이 좋아 서비스업이지, 길바닥에 세워놓고 들어가는 차들에다 인사시키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생각해? 자 생각해봐, 이 세상에서 넌 누구냐?’ 아니, ‘넌 뭐냐?’

 

# 3 - sssin

「뭐든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정작 갖고 싶은 게 없는 법이다. 간절하게 손에 움켜쥐고 싶은 것은 그만큼 가질 수 없는 것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만일 살아갈 이유가 있고 삶이 간절해야 한다면, 나의 삶은 죽음에 더 가까워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 대한 이유를 찾는다는 것, 이거 좀 간지다. 그런데 지금 나는 굶어죽기 싫어서 돈을 챙겨 나오고, 찬바람을 맞으며 얼어 죽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다. 코미디다. 그래, 이런 우스운 나는 뭘까. 간지있는 죽음을 위해 죽을 이유를 찾아야 겠다. 언제였을까,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힘에 의해 세상에 내던져져 욕구와 욕망에 짓눌린 밑바닥 인생을 살 때 말이야,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살겠노라고 신에게 머리를 조아릴수록 커진 것은 그 행위에 대한 허무함이었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던가? 어떤 삶을 살아야 인간이 신 앞에 당당하겠는가. 기도도, 사죄도, 나에게 인간다움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그래, 어차피 나는 더러우니까 더럽게 살테야!’ 하고 짐승마냥 내 안에서 본능이라고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욕구들을 실행에 옮긴 결과도 허무뿐이었다. 그것은 배설과 다르지 않았다. 채움이란 없었다. 욕구라고 불리는 녀석 중에 어떤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받는 사랑도 다를 바 없더라. 그녀인지 그년인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때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점점 내가 얼마나 치졸한 인간인지를 깨달아가게 되었고 남은 건 아무것도. 그때 느꼈다. , 씨발. 나란 인간은 아름다움, 고귀함, 인간의 존엄과 같은 단어와는 1g도 어울리지 않는구나. . 없어지고 싶다. …그래! 그거다! 없어지고 싶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것! 찬바람 앞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걷다가 굼벵이마냥 몸을 앞으로 돌돌 말아서 뿅!하고 없어지고 싶다. 싶었다. 싶다. 그래, 그거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죽음인 것이다. ! 유레카! 체크! 체크, 체크리스트! [1 사라지고 싶다.(v)] , 머리를 좀 썼더니 배가 고프다. 죽을 이유를 고민해야 하니 나에게 탄수화물을 다오. 당 떨어진다.

 

# 4 - soulcat

「시계를 보니 1 20- 급한 대로 만두 한 팩과 옥수수 수염차 한 병과 츄ㅍ츕스를 샀다.-급하다면서 메인에 음료에 디저트까지 챙겼다- 버스에 오르는 데 기사 아저씨가 운전석에 앉아 표를 받다가 내 손에 들린 봉다리를 보고 말했다. 학생, 먹다가 바닥에다 흘리면 안돼- 학생? 내가? 이 나이에? 내가 그렇게 동안? 기분이 살짝 좋아지려고 입 끝이 씰룩거렸다. 진정해, 이 더러운 입 같으니라구- 저건 칭찬이 아니라 나의 성숙함을 의심하는 비하발언이란 말야! 나는 말했다. 아저씨, 저 학생 아닌데요. 최대한 시크한 태도로 말한다고 했으나 짐작컨대 그냥 어리버리해 보였으리라. 근데 아저씨 왈, 나도 아저씨 아닌데? 그러더니 씩 웃는 거- 웬걸, 난 그에게 반했다. 그 아저씨, 아니 기사님을 보며 어색한 웃음으로 답하고는 내 자리를 찾아 깊숙이 몸을 뉘였다. 마음이 가뿐했다. 그래, 저 분이라면 분명 날 죽음의 성지로 안내해 주실거야- 저승기사(?)님을 믿고 당분섭취도 할 겸 뒤척이는 데 허벅지로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왔숑- 옆집 언니의 문자, -요절이한테 참치캔 멕여두 돼?^^- , 글쎄... 참치는 멕여두 되는데 캔은 멕이지 마. 알루미늄은 못 씹으니까..... 이딴 말장난을 하려다 그냥 심플하게 답문을 보냈다. -무엇이든 멕여보세요- 전송, 그리고 핸드폰 off. 스티로폼 팩을 열고 만두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 맛이 아주 괜찮다, 뒈지기 전에 먹기엔- 도로 팩을 닫고 봉지에 쑤 셔 넣었다. 그리고 옥수수 수염차로 입을 헹궜다. , 덕분에 입맛이 싹 달아났다. 버스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옆자리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정말 학생 같은 학생이 앉는다. 안녕 학생, 만두 먹을래?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는 게 느껴지고 나는 머리를 의자에 기댔다. 눈이 감겨온다. 으음....요절아, 넌 오래오래 살어.......레드 ㅆ .....

 

# 5. - narapark

「 하늘이 달린다. 아니, 구름이 달려간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린다. 요절이가 저 아래서 짖고 있다. 개가 아닌데, 왜 짖고 있는 걸까. 구름이 계속 달려나간다. 이러다간, 나만 남게 생겼다. 나는 요절이에게 짖는다. 잘 살라고, 건강하라고, 짖는다. 남은 구름이 없다. 새하얀 하늘만 눈부시다. 내 눈을 멀게라도 할 작정인가. 하늘은 파란색인데, 왜 하늘은 내게 눈부시기만 할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쩌면 이건 하늘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다. 어릴적 보았던 만화책에나 있을 법한 세상, 하늘도 땅도 그 경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 아까 달려간 구름들은 뭘까, 아니 그런게 정말 달려나가기나 했던 걸까. 어쩌면 내가 끌려온건 아닐까. 내 앞으로 지나간 건 맞지만 나를 지나간게 아니라 내가 지나온 건 아닐까. 내가 보고 있는 곳이 앞이 맞긴 한 걸까.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여긴 어디지? …? 난 뭐지? 내 몸, 내 팔, 다리.. ?!!! 아니다. 아니야, 그럴리가 없다. 난 분명히 봤다. 내 앞으로 달려나가는 구름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어깨를 스쳐지나가는 그 구름들을 분명히 봤다. 그리고.. , 그래.. 요절이가 짖었지. 그리고 나도 짖었지. ?! 짖어? 내가? 요절이가?! ..흐읍그래 다시, 다시, 집중해보자. 난 버스를 탔다. 죽기 위해, 내 노트에 죽을 이유를 작성하기 위해. 그래 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곤 버스를 탔지. 그래, 그랬지.. 그럼 이건, 인가? ‘승객여러분, 잠시 후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도착한 후에는 약 15분간 정차할 예정입니다. 편안한 여행되십시요그래, 역시 꿈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죽은 후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어떻게 될까. 아까 그 새하얀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걸까. 아니면 요절이가 짖어대는 세상에 가게 되는 걸까. 근데 죽은 후에도 세상이 있나? 사후세계? 그런게 있을까..?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런게 없어야 내 죽음이 의미 있는 거 아닌가..? 설마, 그런게 있기야 하겠어? 그래, 그럼 사람들이 뭣 하러 죽는걸 무서워 하겠어, 지옥일까봐? 이 세상보다 더한 지옥이 있다고? 참나, 말이 되는 소릴해야.. 에휴, 니들이 살고 있는 여기가 지옥이다 이 자식들아

 

Posted by narapark :
IV부 관계로서의 사랑
8장 관계의 단절과 회복
p. 250-284.
1. 인간관계 회복하기
브뤄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교제와 협약, 그리고 조작적 관계를 분명히 구분해야 회복되어야 할 관계로의 회복을 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삼위일체적인 관계, 즉 몰트만식의 구원론을 이야기 한다.

2. 대속과 은총
개혁주의 신학에서 칼빈에 따르는 ‘오직은총’의 모델을 구원론에 있어서 맹점을 가진다. 그 모델은 조작적 관계의 모델로 모든 칭찬과 책임, 즉 작동자, 능동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대속과 속상
조작적 관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명되는 협약의 관계는 인격적이고 서로에게 각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 큰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협약의 관계는 서로의 이익을 기반으로 체결된다. 즉 뭐 좋은걸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시작된 관계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이 모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적절히 설명해내지 못한다. 

4. 대속과 하나님 사랑
브뤼머에게 있어서 인간과 하나님간의 사랑은 교제의 관계로 설명된다. 이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이며 동시에 화해의 관계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는 소외된 관계, 즉 회복되어져야할 관계라는 것을 인정함으로서 가능하다. 브뤼머에 따르면 이러한 관계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우리의 그릇된 행위를 통한 손해뿐만 아니라 그릇된 행위도 용서하실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즉 죄 그 자체마저도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이미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백하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을 얻으며 ‘하나님을 알게 된다.’ 이러한 교제를 통해 인간은 ‘실존의 궁극적 의미’를 가지며,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하시는데, 내가 거부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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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부 관계로서의 사랑
7장_관계
4. 사랑, 성, 자유, 지식
p. 137-249.
브뤼머가 생각하는 사랑은 일종의 동기를 가진다. 욕망의 대명사격인 성적 욕구도 사랑에 있어서는 동기로 기능한다. 그러나 A가 만족을 원하는 가 B라는 사람을 원하는가는 그들의 관계가 조작적 관계가 되느냐 교제의 관계가 되느냐를 좌우한다. 브뤼머는 성이 두 가지 방식으로 사랑으로 들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가지는 사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지만 성을 줄어드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관계에서 욕구는 사랑의 동기로서 작용한다. 그 후 그 욕구는 사랑으로 대체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욕구에서 사랑으로 대체됨으로 인해 더 이상 욕구가 사랑의 동기가 되지 않는 모습에 있다. 이 때 성적 행위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 된다. 그러나 관계에선 두 사람이 모두가 성적 행위를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또한 브뤼머는 주장하기를 사랑의 관계에서 내가 그 관계에 불성실하게 되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 불성실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 주장을 통해 사랑의 ‘필연성’이 도출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필연성을 어떤 능력의 결핍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브뤼머에 따르면 이러한 모습은 사랑의 관계에 있는 나와 상대방이 인간으로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 사랑이 강제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사랑의 관계가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런 서약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종의 느낌을 통해 사랑의 동기를 얻고, 그 동기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을 거쳐 사랑의 관계로 들어선다. 이 때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가지게 되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묶이는 것과 같이 일종의 서약을 체결한 것과 같다. 
한편 브뤼머는 사랑이 지식의 전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브뤼머에 따르면 사랑은 오히려 지식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 내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식에 반대되는 개념은 무지가 아니라 소외이며, 고립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브뤼머는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며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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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부 관계로서의 사랑
7장_관계
3. 협약과 교제
p. 223-237.
브뤼머에 따르면, 협약과 교제의 관계는 둘 모두 인격적 관계이다. 왜냐하면 협약과 교제는 모두 ‘두 상대자가 인격적 행위자’라고 전제하며, 그 관계를 세우고 유지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방의 자유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협약의 관계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체결되며, 조약이 없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에 반해 교제의 관계는 상대방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당신과 동일시’ 하여 당신의 이익과 주장을 나의 것처럼 취급한다. 이러한 교제의 관계는 협약의 관계보다 네 가지의 측면에서 위험부담이 크다. 
우선 조약은 강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을 강제하지 않고 조약에 따라 상대방을 그 자신의 책임 아래 둔다. 그러나 교제의 관계에서는 협약 관계에서 처럼 상대방의 우정이나 사랑을 살 수 없다. 둘째, 조약은 상대방의 이익을 위한 나의 ‘봉사의 가치’가 화두이지만, 교제의 관계에서는 나의 ‘인격적 가치’가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교제의 관계에서 나의 인격적 가치는 상대방이 나를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인격적 가치와 정체를 부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셋째, 교제의 관계는 나를 ‘인격적’으로 위험하게 만든다. 협약의 관계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할 일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고 이 경우 행위의 근거는 내가 아닌 상대자에게 있다. 그러나 교제의 관계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할 일을 결정하고 그 행동이 유지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교제에서 내가 이 관계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하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인격의 정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의미로, 교제의 관계는 인간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데에 위험성이 있다. 인간의 인격의 정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적절히 반응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교제의 관계가 변화에 어떻게 얼마나 잘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과 같다. 즉 교제의 관계는 한계를 가지며 상호호혜 속에서만 가능하다. 

-> 인격의 정체는 A와 B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일 때만 가능한가? 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Posted by narapark :
IV부 관계로서의 사랑
7장_관계
2. 인격적 관계와 비인격적 관계
p. 213-223.
브뤼머가 지적하는 조작적 관계는 근대의 주체철학에서 드러나는 맹점과 상충한다. 조작하는 자와 조작당하는 자는 주체와 대상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비대칭적이며 비인격적이다. 그러나 사랑은 인격적 관계로서 대칭적 관계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는 누군가가 세우거나 유지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은 조작적 관계의 범위를 벗어나는 현상이다. 조작적 관계에 있는 한, 그 조작자는 사르트르의 말대로 그 ‘자신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편 사랑은 상호호혜적이기 때문에, 각 상대자의 자율성을 담보로 한다. 이 자율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한 그 자율성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자율성을 보장된다. 여기서 상처받기 쉬운 쪽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인간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며 따라서 비인격적 관계로 귀결된다. 브뤼머에 따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 인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하나님인가? 인간의 자율적 실존의 논리적 흐름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그저 받았기 때문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 

Posted by narapark :
IV부 관계로서의 사랑
7장_관계
1. 들어가는 말: 느낌, 태도, 관계
p. 205-213.
브뤼머에 따르면 사랑은 관계 개념으로 정의 될 수 있다. 사랑은 태도가 가지는 특성 세 가지(지향, 판단, 성향)를 공유하지만, ‘상호호혜를 향한 욕구’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은 어떤 태도를 발생하게 하여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각 상대자가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려있는 상태 혹은 관계의 장(長) 개념으로 정의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관계를 향한 전 단계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로서 관계성을 포함한다.
이러한 일련의 논리적 흐름은 느낌이 수동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느낌이란 수동적이며, 그 느낌을 받은 자유행위자(agent)는 그 느낌에 상응하는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 태도를 선택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며, 할 것이라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정책적 헌신으로 말해질 수 있다. 여기서 브뤼머는 반 드 바테의 지적에 따라 느낌과 느낌이 일으키는 정책을 구분한다. 즉 느낌은 헌신의 원인이 될 수 없으나, 느낌이 일으키는 정책은 헌신의 원인이 되며, 자유행위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즉 자유행위자 A의 행동에 자유행위자 B가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 반응은 A의 행동이 함의하는 정책에 동의하는 것이며, 나아가 협약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일이 일어날 때 A의 사랑은 A와 B 사이의 상호 사랑, 즉 상호호혜의 관계에서 성취된다.
따라서 이러한 모습은 A와 B가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것, 다시 말해 관계의 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 상호호혜가 가능하기 위해서 전제 조건으로 각자의 주체성, 개체성, 실체성, 실존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자유행위자이기 위한 자율성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Posted by narapark :

관계의 문제.

2010. 2. 8. 03:17 from 없는, 글.

그동안 나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리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내림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무엇을 말하든지, 행복이란 이름에 불과하며 쉽게 단정하자면 노력의 과정에서 구해지는 어떤 것이다.
이런식의 질문은 최초의 물음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 때문에 불행한가? 이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이 행복에 반하거나, 뭔가 어긋나 있어야 하는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행복할 때에는 행복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라 생각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그렇게 느끼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기보다는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허영', 바로 이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며, 그렇게 느끼도록 강요한다.
허영이 자리한 삶에는 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올바른 주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정체성 또한 불확실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자기애의 부재를 초래하며 곧 불행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쥐어줄 것 처럼 말하면서 말이다.

자기애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자아주체성은 언제건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자기애로 시작해서 타인 되기를 거쳐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주체성,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성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허영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기애로 부터 시작하는 주체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려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때문에
허영의 감정보다 앞설 수 있다.
우리는 서양근대 철학에 녹아 있는 자기애로부터의 주체를 탐구함으로써
허영에 빠져 불행함에 허우적대는 우리 스스로를 구출할 수 있다.
나아가 올바른 주체성을 가진 주체로서내가 아닌 다른 주체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건 관계의 문제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뿐만이아니라
나와 아닌-나, 그리고 주체와 주체의 관계.
우리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내가 아닌 다른 주체,
우리는 그것을 '너'라 부르며
너의 집단을 일컬어 '너희'라고 한다.
결국 문제는 나와 너희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어떤 문제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너희가 더이상 너희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될때에야 비로소 '문제'가 발생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답 또한 필요하게 된다.


주체, 나르시시즘, 불행, 행복,



 흠. 일기만도 못하구나
Posted by narapark :

행복한 삶을 위하여

2009. 6. 6. 20:18 from 없는, 글.

Posted by narapark :

눈물 - 그녀

2009. 5. 30. 01:45 from 없는, 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나와 다른 그에게 끌린 것인데, 그와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다름에도 불구한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 감사하다고 여겼지만, 점차 우리의 닮은 점이 우리가 마치 운명이라는 것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고 그것들이 우리를 묶어줄 것 같았다. 당연한 다름이 그와 날 이별하게 만들 것 같았다. 난 내 사랑의 시작인 다름을 점차 극복해야할 대상같이 느꼈다. 나와 다른 그를 보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고 다름을 원망하게 되었다. 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했고, 그는 나를 힘들어 했을 것이다.


나는 눈물이 가진 힘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내가 약함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선 물론이고 혼자 있을 때도 난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서 흐른 눈물에 난 당황한다. 내 전부였던 너다. 그토록 닮고 싶었고, 하나이길 바라던 그는 이제 다른 누군가의 전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나를 잃는 것 같다.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듣고, 관심 없던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의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같을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 난 어리석었던 것일까, 난 끝내 같아지지 못한 우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눈물을 참아본다. 목이 아파오지만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화장을 고치기 위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는데, 그 사진이 보인다. 그래, 이것 때문에 너에게 다시 전화를 했었다. 네가 나를 처음으로 찍어준 사진이다. 내가 모르던 나의 표정이 그 안에 담겨있다. 우리의 처음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나도 사진을 향해 한번 웃어 보인다. 그에게도 웃을 수 있을까? 사진을 가방에 넣고 화장을 고친다. 마지막으로 립밤을 바르고 눈과 입에 힘을 주어 미소를 연습한다. 아, 자신 없다.


자리로 돌아와 그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다. 내가 한번 웃어 보인다. 도저히 이 사진은 버릴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사진을 건넨다. 그가 살짝 동요하는 듯하다. 그 사진 외의 것은 버렸다. 아니, 버릴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너의 흔적을 찾고 싶을 때 단 하나도 찾지 못해 지금 나의 결심을 후회하게 될 지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결심은 더 이상 번복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아프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또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러지 않았으면 하지만, 강요할 수 없다. 지금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의미 없는 말들로 이 침묵을 깨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방법 같지 않다. 그가 사진을 들여다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 시간의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까? 끝나버린 사랑이 사랑의 처음과 마주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난 그 사진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치 과거에 대한 책임을 미루듯 그 사진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미룬다. 그리고 사진을 어쩌지 못한 것처럼 한동안 내안의 그를 간직하지도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by  신아

Posted by nara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