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됨에 대해서.

2014. 7. 24. 14:14 from 숨, 고르기.





비가 계속온다.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카메라 챙겨 다녀야는데, 한 컷도 찍지 않고 돌아가는 날이 많아 잘 챙기지 않게 됐다.

소나기가 내릴때 어설프게 피어오르는 물 안개와 저벅저벅 걷는 우체부 아져씨가 기억에 찍혔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식이 있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사진처럼 장면으로 기억한다.

약속 장소, 시간, 모임의 이유, 사람들을 하나의 사진으로 기억한다.


가끔 아,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라고 말하는 건

정말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고 이유는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되지 않는 장면도 가끔은 그려지곤 하는데,

거기에 도달했을 때의 장면이 그려졌던 장면과 달랐으면 좋겠다고 기대한다.

대표적인게 군대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들 중 상당부분은 나의 모습이고, 행동이나 말도 포함된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나의 행동이나 말, 주변이 

나를 인식하는 타인에게 어떤 작용 하는가이다.

물론 타인에게 인식된 나의 모습도 중요하다.


눈치를 본다고 해도 좋을 것이고 내향적이다 해도 좋을 것이다.

나를 나로써 완성하는 건 단지 나만이 아니라.

내 안의 수 많은 나 더하기 타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주는 공포는 이런 것이다.

장면 기억에 기대 눈치를 보고 내향성을 가꾸는 건 이 공포에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알 수 있는건 이 공포에서 결국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몇 가지의 키워드로 설명되는 사람이다. 

굳이 자서전을 펴내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생각하면 슬퍼지고 만다. 공포는 이런 슬픔을 불러온다.



Posted by narapark :

당연하다.

2014. 6. 19. 12:07 from 숨, 고르기.

당연한 소리를 당연한 말로 당연하게도 당연하다고 하는 말들에 대해 신물을 느낀다.

조금 더 시건방진 얘기를 하자면, 설마 그걸 이제사 알고 말하는 건 아니지? 라는 의문부터 생긴다.

그래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런 감정은 말들에 느끼는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실망감이며 허탈함이고 부끄러움이다.


그 나물에 그 밥, 도 긴 개 긴, 오십보 백보. 그 중의 제일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니,

한데 어울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마냥 이도저도 아닌 모양.

다자키 쓰쿠루야 순례를 떠났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하마터면, 까지 쓰고 보니, 나도 참 못 났구나 싶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나면서 찾게되는 것들,

자신의 색을 결국에는 이제사 알게된 것들이니까.

무언가 있다. 라는 의식이 이전부터 있었던지 없었던지 간에 

여기서 중요한건 이제사 발견하게 되었다라는 시간상의 맥락 아닌가.

그렇다고 하면, 이제사 알고 말하는 건 아니지? 라는 의문은 

공교롭게도 그게 무슨 문제냐는 말에 걸려 넘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당연한 듯 내뱉기는 나도 마찬가지구나. 췟. 신물이 난다.

Posted by narapark :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 스트레스는 업무량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업무량이 적건 많건 간에 스트레스 받는 건 매한가지다.


사실, 업무량이 주는 스트레스는 그리 크지 않다.

스트레스의 원인들 중 가장 큰 스트레스는 주는 건 

감정을 드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있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생활을 하게 되면 

분명 문제가 생기고 마는데, 그 문제란게 너무나 개인적이라 

어디가서 하소연 하기도 참 우습다.


문득 떠오른 문장을 적고 보니  

너무 유치해서 지워버릴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까.


생각을 비우게 된다는 감각이 있다.

영화를 볼 때, 소설을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작품을 볼 때.

그려지는 영상과 느껴지는 음율에 기대어 나름의 몰입을 하게 되는 순간.

나는 이 모든 활동이 소비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본 영화는 사라지지 않고, 내가 읽은 소설도 사라지지 않지만

영화보고 소설을 읽는 동안 만큼 내가 가진 시간이 사라질뿐이다.


그래, 생각을 비우게 된다는 감각은 이런 느낌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하지만, 

돌아서보면 없어진 시간만 남겨져 있는 걸 보게 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노력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다보면, 어지간한 감정에 무감해지고

무감해지다 보니 드러날 감정이 없어지기도 하나보다.


나는 기억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메모 해둔 수첩을 잃어버리고, 메모 했다는 사실을 잊고.

나는 많은 걸 새롭게 시작했다.


Posted by narapark :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 이 얼마나 내뱉고 싶던 말이었던가. 꺼져 병신아. 알게 뭐람. 타인의 고통 쯤은 우리 서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가. 내가 네게 그렇고 네가 내게 그렇고. 그렇고 그런 사이. 우리는 우리이기 이전에 너와 나였다. 너와 나는 소리내 부르는 것 외엔 그 무엇도 닿을 수 없지 않던가. 서로를 포기하기엔 조금은 이른 시간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딱히 시간의 문제는 아니었던가 보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나와 나이기에 언제고 간단한 몸짓 하나면 충분한 것이었다. 그건 그저 서로가 타인임을 확인하는 일 일뿐이므로. 



Posted by narapark :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꾸밈에 대해 결벽증적 태도를 보이곤 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진실은 그 꾸밈 너머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네게 누구보다 솔직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했고, 나는 그 일을 꽤 잘 해냈다고 느꼈다.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도 아니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던 일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내 일생의 과업인냥 행동했다. 분명 옳은 일이었고 좋은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 그 무엇보다 자명했다. 

어느날 내 아버지가 내게 던진 한 마디의 말이 마음 한 켠에서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괜찮다. 하지만 네 자신만은 속이지 마라. 아마 당시에 나는 이 말을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괜찮다. 하지만 네 자신에게만은 속지마라. 고 이해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꾸밈에 대한 결벽증적 태도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너를 향해 있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절대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며,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웠다. 나는 네게 속지 말하야 할 수동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었으며 말했듯이 나는 내가 네게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지를 매 순간 증명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우월감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정신승리의 과정이었다고 말 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어딘가에 높은 곳에 서서 이 땅을 굽어 살피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회상하면, 그땐 모두를 깔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졌고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나는 위대했고 모든 면에서 앞서 있었다. 나는 정말로 그랬다. 여기에는 과정도 없었고 결과도 없었다. 이에 대한 기록도 없었다. 단편 영화에서처럼 어떻게 시작됐는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끝났을 땐 왜 끝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랬다. 나는 위대했다. 

Posted by narapark :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많은 생각들을 읽다보면 나도 언제가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살아왔다. 고 우선 적어 둔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그 때부터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누군가처럼 하루에 몇 권씩을 읽어 재끼거나 작법과 같은 학습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만의 첫 문장을 오래도록 기다리면서 문장들이 숨을 쉬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키워왔다. 그러다 어쩌면 이런 막연한 기대와 기다림은 잘 못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어떤 욕심처럼 나만의 첫 문장을 기다리는 것은 그만 둘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느낌일까. 나는 일본 소설들처럼 눈 앞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할 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대하 소설에 등장하는 여백과 치밀함을 표현해낼 자신도 없다. 아마 그래서 더욱 내 첫 문장을 기다리는 것으로 나름의 꿈을 선회시켜 안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지금의 내 모습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려는 노력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식의 자기 위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나는 가면을 공부했고 가면을 벗어 던지는 방법이 아니라 가면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애초에 가면이란 것이 개념상의 뜬구름이 아니라면 앞서 존재한 것이기 때문에 벗어 던지는 일 따위는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네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훈계하듯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을거다. 그 언젠가는 마치 습관처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따위와 같은 대단해 보이지만 놀림감이 되기 딱 좋은 일들을 벌이기도 했을테니 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 이상 내게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었고 오로지 마주함에 대한 열망만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도 과정도 중요하지 않았고 그 현상에만 집중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었고 나는 열심히 그 일에 참여 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적잖이 어리석은 짓이었다. 기록에서 누락된 과정과 결과, 현상에서 벗어난 관점은 나를 예상치 못한 심연으로 끌어들였다. 


Posted by narapark :

정돈,

2013. 7. 15. 23:59 from 숨, 고르기.

삶을 정돈 하고자 한다.

그 동안 너무나 무심하게 내팽겨 뒀던 몸뚱아리는 물론

내 주변에 나뒹구는 작은 물건들도 마찬가지로.

이제라도, 라는 느낌이긴 하지만 정돈 하고자 한다.


흘러가는 생각을 애써 부여 잡고 억지로 방향을 트는 짓은 이제 그만 두려 한다.

정신이 가는 곳에 몸이 간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나를 반성하고자 한다.

많은 것을 하려기보다는 눈앞에 작은 움직임에 집중하고자 한다.

고작 하룻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런 것들 뿐이니까.


여전한 마음가짐으로 아주 조금 비틀어 볼 요량이다.

특별한 것을 기대하려는 마음이 이미 한 켠에 똬리를 틀었지만

가만 두면 알아서 뭉개져 버릴 것이다.

욕심을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기대에 미치지 못 해도. 오늘 하루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은 기분에 몇 번씩 눈쌀도 찌푸려 지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조금은 멀리 있는 것을 보고 진행하고자 한다.

당면한 일을 처리 하느라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러다 보면 분명. 지금 보단 정돈된 삶을 살 수 있겠지.


Posted by narapark :

그렇게 믿었다.

2011. 2. 18. 19:14 from 숨, 고르기.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때였으리라 생각해본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꼽고, 더러울 때마다.
경멸의 말을 내뱉으며, 굴복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외부로 비치는 이미지가 지니는 힘은,
실로 나를 완벽하게 위장해주고 있다고.
이 힘은 나에게 득이며,
진실이 무엇이든, 그런건 불필요하다고.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러한 생각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단순한 허영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사실에 기대어 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진실에 기대어 믿어버리는 행위.

나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가늠해본다.
그래. 얼마나 남았을까.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 것인가.
아니면,
돌아서 채울 것인가.

혹시, 또 아니면,
긁어내고 비워 볼 것인가.

그렇게 믿었던, 내 세계가 이제,
무너지고 있다.
내 손으로 둘러친 담벼락에 금이가고
부스럼이 날려,
그 끝이 이제는 곧, 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더이상 무의미 하다.
이미 고립된 사각에서
버둥거리는 꼴이 사납다.

그래, 그렇다.
Posted by narapark :
사람은 누구에게나 누구에게서나.
기대치라는 게 있어,
그건 첫 인상에서 시작 될 수 도 있고.
어느 순간 부터인가 만들어 질 수 도 있는 거지,
너 또한 나에 대한 기대치가 있을테고.
나 또한 너에 대한 기대치가 있을꺼야,
하지만 중요한건 그 기대치의 존재가 아니야.
그 기대치라는걸 네 스스로 얼마나 받아 들이고,
감싸안을 수 있는가야.
네가 나에게 바라는 만큼,
나 또한 너에게 바라고 있다는 걸 잊지마.
나도 기억할테니까,
거짓말을 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아.
그건 들키느냐 들키지 않느냐가 중요해,
사람이 얼마나 솔직하느냐는 거기에 달렸어.
내 모든것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래서 사람은 외로운거야,
그게 어른이라는 거고.








05.1.11
Posted by narapark :

한계.

2009. 5. 12. 02:35 from 숨, 고르기.
나는 내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어른을 보면서 나는 그곳이 내 한계라 언제나 의식하고 있다.
내게 있어보이는 것들은 그저 그대로 있어보는 것 뿐,
진실, 혹은 사실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드러나는 현상들은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뿐.
더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의 한계.
미안하지만 아니, 안타깝게도 그렇다.
나의 한계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다.
특별히 나에 대한 나의 평가는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고개 숙여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나에게 남은 건 나 일뿐. 너희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인정하는 내가 전부이다.
 
어리석은 사람을 믿지 못하 듯, 나 역시 믿지 말아주길.
언제든 뒤통수를 때리며 사라질 날이 올테니.
내게 진실이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속임수따위 꺼리낌없다.
조심해. 네 뒤통수가 내 목적이 될 수도 있으니.
Posted by nara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