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8.20 어떻게든 쓰자_001
  2. 2008.10.12 영화처럼 - 가네시로 가즈키
  3. 2008.10.10 개밥바라기 별 - 황석영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많은 생각들을 읽다보면 나도 언제가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살아왔다. 고 우선 적어 둔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그 때부터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누군가처럼 하루에 몇 권씩을 읽어 재끼거나 작법과 같은 학습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만의 첫 문장을 오래도록 기다리면서 문장들이 숨을 쉬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키워왔다. 그러다 어쩌면 이런 막연한 기대와 기다림은 잘 못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어떤 욕심처럼 나만의 첫 문장을 기다리는 것은 그만 둘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느낌일까. 나는 일본 소설들처럼 눈 앞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할 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대하 소설에 등장하는 여백과 치밀함을 표현해낼 자신도 없다. 아마 그래서 더욱 내 첫 문장을 기다리는 것으로 나름의 꿈을 선회시켜 안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지금의 내 모습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려는 노력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식의 자기 위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나는 가면을 공부했고 가면을 벗어 던지는 방법이 아니라 가면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애초에 가면이란 것이 개념상의 뜬구름이 아니라면 앞서 존재한 것이기 때문에 벗어 던지는 일 따위는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네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훈계하듯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을거다. 그 언젠가는 마치 습관처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따위와 같은 대단해 보이지만 놀림감이 되기 딱 좋은 일들을 벌이기도 했을테니 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 이상 내게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었고 오로지 마주함에 대한 열망만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도 과정도 중요하지 않았고 그 현상에만 집중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었고 나는 열심히 그 일에 참여 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적잖이 어리석은 짓이었다. 기록에서 누락된 과정과 결과, 현상에서 벗어난 관점은 나를 예상치 못한 심연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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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가네시로 가즈키 (북폴리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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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얽힌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
8월 31일. 여름방학의 마지막이기도 한 그날은 영화 로마의 휴일보다 아름다운 밤이 된다.
각자가 사는 모습은 전혀 다르고. 그들의 상처 또한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큰 아픔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돌고 돌아 그 날에 이르럿고 혹은 예정되지 않았던 설렘으로 그 날을 맞이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혼자가 된다는 것을 슬픔으로, 때로는 익숙한 것으로 생각하며 괴로움 속에 허우적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희망을 되찾고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역시 사람이란, 행복을 추구할 때 가장 아름답다.
그저 그 상황에 익숙해지는 건, 상처로부터 달아나는, 소용없는 짓이다. 그래가지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보 같더라로 솔직해지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혼자 앓는다고 달라지는건 없으니 말이다.
눈물이 '왕!'하고 터져버린다면, 그들 처럼 그냥 울어버리자. 아무도 그 걸 비난 할 순 없다.

Posted by narapark :
개밥바라기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황석영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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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다만 손에 잡히는 책이 있으면 그저 읽을 뿐이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이 출간 되었을 때, 이미 그 소식을 신문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보통은 제목에 끌려 책을 구입하는 나로써는 꽤 구미가 당겼다.
'개밥바라기별이라... 청춘.. 청춘...?' 하는 마음으로 책을 골랐던 듯 싶다. 그 무렵 『청춘 사용 설명서』라는 책을 읽은 여운에 '청춘'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을 짚어든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책을 다 읽기 까지는 조금 오래 걸렸다.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본소설에 익숙해진 나로써는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조금 어려움을 느낀다. 물론 일본 소설이라고 해서 그게 쉬운건 아니지만 일본 소설은 보통 읽기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일까. 한국인이면서도 우리 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게 이상하기도 하지만 익숙하고 그렇지 못한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하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 왔던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중간에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일이 있어서 책을 읽는 데 무리가 있기도 했다. 뭐 그 만큼 열심히 한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급했던거겠지..
한가지 더. 핑계를 대자면 시점의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각 장마다 제목이 달렸다면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된게 제목은 없고 숫자로만 장들이 나뉘어져 있다. 첫 장을 읽고 두 번째 장을 읽을 때 갸웃둥 거리며 앞장을 훑어 보던 것이 기억난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 이야기이긴 한데, 이건 누구지?' 하면서 말이다.
읽고난 후에는 재미있는 구성이었고, 왠지 모르게 더 깊은 몰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젊은 이들이 좌충우돌,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청춘들의 방황을 다룬 작품이 아닌, 그들이 삶을 대하는 진지한 모습을 그려냈다. 어쩌면 저자는 어린 시절이라는 공간과 그리고 젊음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에 기대어 지금의 어른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남들 처럼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통념에 삿대질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결코 옳다고 말할 수 없으며,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소신있게 자신의 길을 찾아 달려가는 것이야 말로 개밥바라기별이 금성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은 마치 동화 '미운오리 새끼'를 생각나게 한다.
황석영은 우리 시대의 어른들에게 또 아직 젊은 학생들에게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는 무의미 한 것이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얼마나 정당하게 맞서고 있는가이다. 라는 것을 말 해주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Posted by nara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