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에 해당되는 글 116건

  1. 2021.03.11 정말 절망하기 전에
  2. 2015.01.22 비난하는거야.
  3. 2014.12.18 매년,
  4. 2014.12.17 괜히 기록해 뒀다고 생각했다.
  5. 2014.12.12 그게 뭐라고
  6. 2014.10.21 꿈을 꾼다고 한다면,
  7. 2014.10.17 여기, 이야기가 있다.
  8. 2014.10.16 뭉크를 보다가.
  9. 2014.10.13 아마 10년은 넘었지 싶다.
  10. 2014.09.16 슬픈 말이다.

돌아간다
시고 소설도 음악도
자꾸만 그 시절 그 감정으로 돌아간다
그 뒤로 쌓은게 없으니까
이게 내 한계다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다
그 시간을 그 날로 돌아가는 수밖에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그저 스무살
그때 읽고 쓰고 들었던
어른인척 하던 나만 있을 뿐이다
한심하다
1센치도 자라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
우려먹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아니다
아직 멀었나보다
뭐라도 그게 뭐라도
일단 채워야겠다
고르고 고르다 아무것도
못 채우기 전에
뭐라도
그래 뭐라도
채워야 겠다
너무 비었다
너무 아무것도 없다
정말
절망하기 전에

Posted by narapark :

비난하는거야.

2015. 1. 22. 13:55 from 숨, 고르기.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세상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
예를 들면, 음..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첫 질문이 결혼은 언제하냐는 류인 사람이라거나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먹고 살만한가보다는식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드립을 치는 사람들을 들 수 있을거야.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그건 혼자 있는 걸 못 견딘다는 거야.
혼자 있는 걸 못 견딘다는 말은 이렇게도 볼 수 있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 한다.
뭐 모두가 그런건 아니겠지만, 일종의 카테고리랄까, 분명한 한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범위 안에 든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
내가 딱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얼마전에 그런 얘길 들었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이렇게 말 하더라, 먹고 살만 한가보네?
그래서 말 해줬지. 맞아요. 꼬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딱 싫게.
말 좀 안 걸었으면 참 좋겠는데 말야.
Posted by narapark :

매년,

2014. 12. 18. 10:01 from 숨, 고르기.
매년 그렇긴 하지만,
올 한 해가 또 어떻게 지나 갔는지 모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 하게 된다.
정말로 몰라서라기 보다는 어쩌면 기억하기 싫은 몇몇의 일들과 거기에 묻어 있는 감정 찌꺼기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들이니 나도 기억을 추억에 묻고 가지 않을까 싶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였다 하고 돌아 볼 일은 없다.
그저 작년과 비슷했고 다른게 있다면 작년엔 서른 하나였고 올핸 서른 둘이었다 정도 일까.
나에게 닥쳤던 시련따윈 없었던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이직 제안에 고민도 했고 허울뿐이긴 해도 한 계단 승진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살았고 욕심을 내자면 이 시간들이 조금만 더 유지 됐으면 한다.
다음날을 내다보기 힘든 삶은 이젠 너무 지치고 누가 보살펴주든 그건 내 삶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로 읽게된 예전 내 글들 때문인지 글자 위 펜이 멈칫한다.
내 삶과 내 삶이 아닌 것에 대한 구분 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때 만큼 나는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식한 확신과 영리한 회의 사이에 남게된 건 내탓만은 아니겠지.
지난 몇 해 놓친 감각적인 언어들이 아쉬울 따름이다.
내년엔 올해보다 더 적은 책을 읽을 생각이다. 올해도 충분히 적은 책을 읽은 것 같지만, 내년엔 한 권을 깊게 읽을 생각이다.
바닥을 드러낸지가 오래되어 언제고 채워야 한다 생각했던 일이다.
어디론가 흘러나가 바닥이 보인 줄 알았지만, 다른 곳의 수위가 높아져 상대적으로 얕아진 걸 깨달았을 때, 그 수치는 비참했다.
비교 우위에 설 수 없다는 박탈감보다는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한심함이다.
와, 그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했구나!?
소모되는 것은 등가교환이라 이해의 범위에 있지만 소모되지도 않았는데 얕아졌다면 너무 오랜 시간 방치해 뒀다는 증거이므로
이제는 더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
매년 그렇긴 하지만, 다짐이란 참 쉽다.
Posted by narapark :

괜히 기록해 뒀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의 감정이 살아나

다시금 속이 상하고, 쓰리다.


기록의 의미는 좀 더 멀리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그냥, 아무 의미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그 때 잊었으면 그만인 것을.


주어가 탈락된 욕설만 지껄이다,

조각난 자존심이나 주워 모으다 끝난 일인 걸.



Posted by narapark :

그게 뭐라고

2014. 12. 12. 19:36 from 숨, 고르기.
일을 하자 했건만,
그게 뭐라고 그렇게 따져드는지
어이없음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곤 드는 화,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딱히 해줄 말을 고르지 못해 눌러 삼켰다.

사람들이 왜이리 이기적인가 싶어
잠시 침울하다가도 잘 모를테니 싶은
뜻하지 않은 동점심이 생겼다.

그게 뭐라고, 그리도 달려드는지
Posted by narapark :

꿈을 꾼다고 한다면,

2014. 10. 21. 15:22 from 숨, 고르기.

꿈을 꾼다고 한다면,

마치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빠진다.

서재를 가지고 싶다거나, 시골에 살고 싶다거나, 카페를 차리고 싶다거나

이런 바람들은 꿈이 아닌듯 혹은 너무 큰 일인 듯 점잖게 밀려난다.

현실로부터 망상의 세계로 더 이상은 아무것도 아닌채로.


내가 바랐던 세계가 아닌 곳에 살아가야 한다는 건

고통스럽기 보다는 그저 무기력해져 가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음에 쓰러져가는 것과 같다.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삶이라면

꿈이란 바랐던 세계를 계속 바라는 걸까.

친절한 속삭임 뒤에는 언젠가는 끝난다는 기대가 실렸을 수도.

결국은 끝나고 말 일이라는 뒷짐진 생각이 

어찌할 수 없음에 동의하고 의지하는건 또 아닐까.


시간은 간다. 사라져버린다. 바랐던 세계가 

다시 저 만치 밀려난다. 꿈을 꾼다고 한다면,

달려가 간격을 좁혀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럴땐 차라리 고통이라면..



너희들은 무슨 꿈을 꾸니?




Posted by narapark :

그러더라. 자아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라고. 

그러곤 이렇게도 말 한다. 자신의 욕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자신의 능력의 차이를 경험하는 것.

현실과 꿈을 분리 하는 것, 세상과 나를 구분할 줄 아는 것. 내 환상과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

이는 성장의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말이다.


그렇더라.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모하다.

무모한 사람은 본인보다 주변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자아를 깨닫지 못한 인간이 갖는 고통이라는 것은 치유해야 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스스로 싸워야 할 종류의 것, 즉 투쟁의 대상, 제거의 대상에 불과하다.


자신의 한계와 맞서 싸우라는 말은 폭력적이다.

성과주의와 자기착취, 그리고 긍정주의와 개인화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런 세상은 모든 문제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기 때문에 

사회가 그를 외면한 것 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애초에 사회는 개인에게 관심이 없다.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할 똑같은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건강하다 혹은 정상이다라고 말 할 수 있으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착취에 기반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속에서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착취가 끝난 대상은 버려질 뿐이다. 
사냥이 끝났더니 복날이 왔다더라는 말이 의미있게 들리는 이유다.

폭력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 나의 과제라면
폭력을 휘두르지 않은 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건 내 자아를 깨닫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인 동시에
우리의 자아를 깨닫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끝내 우리가 될 수 없다면, 선택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윈터 이즈 커밍이다.


Posted by narapark :

뭉크를 보다가.

2014. 10. 16. 13:12 from 숨, 고르기.

가만 생각해보면, 기괴함 보다는 남다름에 열광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뭉크의 특별함은 판타지 요소와는 전혀 관계없는 집중에 있었다.

감정의 과잉과도 상관없는 특정된 감정에 대한 집중이다.


무엇이든 과잉은 금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과유불급이란 말도 참 좋은 말이라 생각하고

조금 확장해서 견물생심이란 말도 좋아한다.

약간은 부정적인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구체화를 시켜보면 이런 맥락의 확장이다.


어떤 감정이 발생하기까지 거치는 여러 과정들은

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사실 우리 삶이 무엇이 있고 없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

큰 문제는 내가 그것이 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도 일리있는 말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앎과 앎에 따르는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앎이 함의하는 결정된 행동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슬픈 비밀을 알았다고 해서 반드시 슬퍼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말과 같다.


Posted by narapark :

입대 전이었다. 지루한 아르바이트 와중에 뭉크의 그림을 봤다. 작게 프린트된 뭉크의 절규는 오후를 지난 시간만큼 먹먹했다. 손바닥만한 그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처음엔 반가움이 있었다. 처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고마워졌다. 아마 10년은 넘었지 싶다. 







Posted by narapark :

슬픈 말이다.

2014. 9. 16. 14:16 from 숨, 고르기.

누군가에게 소용이 닿는 인간이란 어디에도 없는거야 - 무라카미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 김연수


무라카미류는 이런 슬픈 문장을 통해 인간의 자유로움을 찬양한다.

가치있는 인간의 정의를 누군가에게 소용이 닿는 인간이라고 할 때,

이 세상에 가치있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건 비열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데

그건, 인간은 누구나 대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연수는 심연을 건너려면 날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심연을 건너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

하지만 단정하기를, 우리는 결코 날개를 가질 수 없다.

결국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알 방법 따위는 애초에 있지도 않다는 말이다.

가질 수 없는 날개는 우리를 이렇게 절망시키고 좌절시키기 위해 존재한단다.

날개가 없었다면 심연을 건널 기대도, 건널 수 없다는 좌절할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롭기에 자유로운 것과 넘을 수 없기에 본심을 알 수 없다는 좌절감의 사이에서

어쩌면 우리는 선택을 강요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 힘인 것과 동시에 모르는 게 약이되는 것 처럼 말이다.

빨간약이냐, 파란약이냐. 뭐 그런,

한 선으로 엮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 기다리는 것. 

일이라면 일 일테고,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소용이 닿지 않기에 나는 자유로우며

누군가에게 닿을 수 없는 한 나는 절망에 놓인다.

슬픈 말이다.



Posted by nara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