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문제.

2010. 2. 8. 03:17 from 없는, 글.

그동안 나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리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내림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무엇을 말하든지, 행복이란 이름에 불과하며 쉽게 단정하자면 노력의 과정에서 구해지는 어떤 것이다.
이런식의 질문은 최초의 물음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 때문에 불행한가? 이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이 행복에 반하거나, 뭔가 어긋나 있어야 하는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행복할 때에는 행복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라 생각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그렇게 느끼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기보다는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허영', 바로 이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며, 그렇게 느끼도록 강요한다.
허영이 자리한 삶에는 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올바른 주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정체성 또한 불확실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자기애의 부재를 초래하며 곧 불행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쥐어줄 것 처럼 말하면서 말이다.

자기애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자아주체성은 언제건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자기애로 시작해서 타인 되기를 거쳐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주체성,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성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허영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기애로 부터 시작하는 주체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려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때문에
허영의 감정보다 앞설 수 있다.
우리는 서양근대 철학에 녹아 있는 자기애로부터의 주체를 탐구함으로써
허영에 빠져 불행함에 허우적대는 우리 스스로를 구출할 수 있다.
나아가 올바른 주체성을 가진 주체로서내가 아닌 다른 주체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건 관계의 문제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뿐만이아니라
나와 아닌-나, 그리고 주체와 주체의 관계.
우리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내가 아닌 다른 주체,
우리는 그것을 '너'라 부르며
너의 집단을 일컬어 '너희'라고 한다.
결국 문제는 나와 너희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어떤 문제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너희가 더이상 너희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될때에야 비로소 '문제'가 발생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답 또한 필요하게 된다.


주체, 나르시시즘, 불행, 행복,



 흠. 일기만도 못하구나
Posted by nara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