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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3 남김없이 내려놓음. 6
남김없이 내려놓음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조니 램 (바이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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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독교인이다. 사실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개념의 차이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향락'을 멀리 해야한다. 술, 담배, 뭐.. 어릴땐 오락실도 가면 안되는곳이었으니.. 그러나 그게 정말 기독교인이 하면 안되는 일들일까? 사도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타인에게 선(good)한 영향력을 위한 자기 절제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걸 거부했을 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그 교회안에서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 회장을 하기도 했다. 나는 신학대에 입학을 했으며, 이건 내 소명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시절 즉, 내 머리가 조금씩 커졌을 때, 나는 교회를 밖에서 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회장을 역임했고, 신학대를 소명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결국 나는 신학을 마치지 못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기독교가 내가 아는 그 기독교가 아님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회라는 집단이 내가 아는 그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아님을 보게되었다. 이제는 다 까먹어버린 그 수많은 교파와 교단, 성경이라는 성스러운 글을 왜곡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교회, 나는 쿠토를 느끼면서 떠났다. 교회를 떠나고 신학을 멈추면서 내가 한 선택은 '기독교철학'이다. 국내엔 하나 밖에 없는 학문, 신학과 다른, 속칭 '은혜로 하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 정확한 텍스트의 해석과 완벽한 논리를 요구하는 철학. 그렇다면 기독교적인 철학이란 무엇일까. 
  나는 사실 처음엔 현재 우리나라의 기독교의 속내를 들춰보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다. 하지만 기독교철학이 내게 준 것은 '사실'과 '진실'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사실을 택할 것인가 진실을 택할 것인가. 이 학문은 내게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수년간 가졌던 의심들에 대한 대답보다 새로 생겨나는 의심이 더 많아지게 되기도 했지만 확실한건 하나씩 그 명확한 대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자 그럼,『남김없이 내려놓음』은 우리에게(기독교인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대답을 들려주고 있는가?

  조니 램의 『남김없이 내려놓음』은 『긍정의 힘』이라는 책과 크게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믿음으로 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 기독교 안에서 특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음주의적인 이 운동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미국제 복음주의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앞으로 개신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청교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이유 또한 같은 맥락으로 풀이 될 수 있다. 청교도는 미국을 세운 개척자였으며 종교개혁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남김없이 내려놓음』과 『내려놓음』,『긍정의 힘』과 같은 책들에서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과 당신의 1:1의 관계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당신의 하나님과 대화하고 그 곳에서 개인이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009년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하나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즉 저자 조니 램이 겪은 삶과 그 곳에서 맺어진 수 많은 관계 그리고 책에 소개되고 있는 그의 친구들의 삶은 그야말로 가장 기독교적인 삶일 것이다. 예수를 믿을 수 있다면 아니, 예수를 믿는 다는 그 행위자체가 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남김없이 내려놓음의 시작이자 끝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질문인 동시에 대답이다. 아주 간단한, 어떻게 보면 너무나 편리한..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논리적 방법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다지 간단하지도, 그렇다고 편리하지도 못하다. 남김없이 내려놓음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쩌면 불가능 한 것을 요구한다. 네 욕심을 버려라. 남김없이. 전부를 내려 놓아라, 나는 이것을 일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의 욕심이 없었다면 불가능 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재미없는 얘기를 하자면, 과거 구약시대에 바리새인이 구원의 길에 들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를 것이라 믿었지만 사실 율법은 지킬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즉, 불가능 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율법들은 예수의 탄생을 위해 준비된 것 뿐이었다. 다시 말해, 율법의 목적은 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구원은 그리스도(예수)를 통해서 라는 것이다. 불가능한 율법지키기를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주는 방법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자 그럼 다시 얘기로 돌아가보자. 예수를 믿는 다는 그 행위자체가 질문인 동시에 대답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김없이 내려놓음』이 던지고 있는 질문과 대답은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이며 남김없이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예수를 믿는 것'으로 시작되고 그 것으로 끝을 맺는다. 불가능 한 일이 가능한 일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 불가능한 남김없이 내려놓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수를 믿는 것'은 이미 믿은 사람에게 시작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져가야할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덕목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끝까지, 지킬 수 있게 되기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아닌 진정한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한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사도행전 16장 31절)
Posted by nara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