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 118

이상과 현실사이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만남은 힘겹다. 이상주의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주의자가 이해되지 않는다. 현실주의자도 마찬가지로 이상주의자가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둘 중 누군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롱하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상주의자는 조롱당하기 쉽다. 이상과 상념은 한 끗 차이니까. 게다가 현실을 강요하는 오늘날엔 더욱 그렇다. 내 선택은 이상과 현실의 그 사이다. 마치 전쟁중에 '나는 중립이니, 제발 좀 내버려두렴' 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건 쉽지 않은 상태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는 뭐가 있는가? 있기는 쥐뿔, 아무것도 없다. 돈도 없고, 꿈을 이룰만한 능력도 없고, 욕심도 없고, 재능도 없다. 그냥 근근히 벌어먹으면서 그 돈으로 할 수 있..

숨, 고르기. 2010.06.18

몸부림.

행복을 향한 몸부림은 아름답다.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땀을 흘리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싶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흔히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하며 행복하고 싶다는 것은 지금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행복이란 그것 자체로 추구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이다.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싶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건 그저 말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거스틴이 말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불행은 단순한 결여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것, 그리고 없어야 할 것이 있는것. 마찬가지로 있어야 할 것이 있을 만큼이 아니라 조금 ..

숨, 고르기. 2010.05.20

휴학.

중간고사로 도서관이 북적거리기 시작할 즈음, 휴학을 했다. 이번엔 졸업하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다시 휴학을 했다. 내가 쓸 수 있는 휴학연한을 다 써버린 상황이었지만, 돈 없음을 증명하면 휴학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학교측의 눈물겨운 배려로, 했다, 휴학. 이번학기만 하면, 드디어 학부를 떠날 수 있었는데, 어째서 일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왜, 또, 이럴까. 이번 만큼은 괜찮을거라 생각했던게 탓이 었을까. 자만이었을까. 아니면, 또 착각했던 것일까. 미디어 아카데미를 등록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휴학은 이미, 예정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코앞의 졸업을 다음 학기로 미뤄내면서, 한편으로는 잘 됐다,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 상태로는 졸업 논문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

숨, 고르기. 2010.05.03

와야만 한다.

봄은, 그래야만 한다. 사흘 밤낮을 엎드려 죽어갈 때, 이 망할 놈의 봄은 왜 안오고 난리인가 싶었다. 출근길은 쌍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춥고 퇴근길도 개발새발 욕지거리를 내뱉게 만든다. 이제나 저제나 따뜻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해가 안뜬다. 코 끝에 대롱 걸린 이 죽일 감기가 술도, 담배도, 커피도 못하게 만들고 사는 낙이 없으니 좀비가 따로 없구나 이제사 안개가 걷히는가 싶긴한데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언제는 안그랬더냐, 언제는 못 웃었더냐. 쇠붙이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슬금슬금 흘러가듯 입술 끝, 미소가 씰룩거린다. 아침 안개가 짙은 날은 덥지. 그래서 짜증이 나지. 오라는 봄은 안오고 지가 무슨 신비주의 연예인 인줄 알고 슬쩍, 얼굴만 비치고 마냐.

숨, 고르기. 2010.04.11

기다려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내게 익숙하다 생각했다. 이제 곧, 이라는 설레임이 있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사실, 익숙하다 생각했던 그 감정 상태는 착각이었다. 나는 익숙한게 아니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란 시계를 벗어나면 공간처럼 움직이지 않으니까. 거기, 그곳에 있다. 그곳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기다림이란 내게 없는 감정 상태의 이름일 뿐이다.

숨, 고르기. 2010.02.28

그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는, 판에 박힌 대사로 시작하는 그러한 이야기처럼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니, 그래왔던 것 같은 어제들을 지나. 이제는 그러지 않으마 하고, 약속이라도 하듯, 그래, 그런 생각을 한다. 입대를 앞둔 청년을 무심히 바라보던 그 잿빛바다처럼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제, 조금은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다짐이라도 하듯, 그런 생각을 한다.

숨, 고르기. 2010.02.24

그럴수 없을 것이라,

그럴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나는 그럴수 없을 것이다. 하루,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꽉 찬 시간을 보냈구나 하고, 만족할수 없을 것이고. 희미한 기억에 애써 매달리며 떨어져버린 눈물을 짚어 삼키는 일도. 그만 둘수 없을 것이다. 오롯이 나, 만을 위했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나는, 너를 잊은 적은 없다.고 말할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허락 할수 없는 것은 몇 걸음, 못 가. 돌아다보게 되는 것. 그래, 나는.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숨, 고르기. 2010.01.29

짧을 短. 생각할 想.

TV에선 축구를 한다. 야동 같은 존재라 이름지어진 국가대표 축구. 웹창은 클리앙과 네이트 그리고 티스토리가 열려있고 지금 막, 네이트온을 ON 했다. 처음 노트북의 전원을 넣었을 땐, 영화나 하나 볼까하고 E드라이브의 영화 폴더를 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음 팟 플레이어는 열려있지 않다. 이미 한 잔, 아니 한 병을 기울여 모자람 없이 채워 넣었고 불뚝 솟은 배는 포만감에 헉헉대고 있다. 새로 펼친 소설책은 책갈피가 끼워져 쇼파위에 나뒹굴고 나는,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앉았다. 이동국이 어쨌다 하는 해설자의 말이 들리고 나는 익숙한 이름에 잠시 고개를 들어봤지만 이동국은 보이지 않는다. 깜빡이던 충전기가 정지해 완료를 알려와 새 건전지로 교체하고 창문을 조금 열어 찬, 첫달의 공기를 불러들인다. 무료하다.

숨, 고르기. 201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