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 118

직업.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 아마 나는 또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다시금 그 저급스러움을 느끼고.. 좌절감에 몸서리를 친다. 내 글은 변하지 않았고. 딱 그만큼 난 성장하지 않았다. 어설프게나마 빈페이지를 가득 채워는 일을 했더니, 그렇게 즐거울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버리다니, 문제는 그만큼의 수준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랄까. 그래서 다시 멈춰섰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내 보인 글에 대한 반성, 호흡을 가다듬고,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어느 때 보다 진지하게 마주 했어야 했다. 기억에, 추억에, 활자들에게.. 지난 일을 문자로 옮기는 작업은, 기억들을 하나의 역사로 재생산하는 작업은 보다 경건했어야 했다. 그렇게 급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는 ..

숨, 고르기. 2011.02.25

그렇게 믿었다.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때였으리라 생각해본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꼽고, 더러울 때마다. 경멸의 말을 내뱉으며, 굴복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외부로 비치는 이미지가 지니는 힘은, 실로 나를 완벽하게 위장해주고 있다고. 이 힘은 나에게 득이며, 진실이 무엇이든, 그런건 불필요하다고.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러한 생각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단순한 허영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사실에 기대어 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진실에 기대어 믿어버리는 행위. 나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가늠해본다. 그래. 얼마나 남았을까.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 것인가. 아니면, 돌아서 채울 것인가. ..

숨, 고르기. 2011.02.18

- 에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고 했던가, 그러지 말고 옐로우였으면 좋겠다. 따뜻한 석양의 빛, 프레임 속 빛나는 역광의 보케들처럼, 수줍은 미소를 닯은, 그런 색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블루는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는건 뭐, 새벽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 그렇게 낮도 지나고 저녁이 올테니까. '그리고 봄'이 오는게 이치라 불리듯..

숨, 고르기. 2011.01.01

그렇다.

그래, 정말 그렇다. 벽을 넘어서지 못한 자가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변하지 않는 생각. 남들이 비웃을 수 있는 자리에서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한다해도, 결국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현실에 대한 타협이라 생각된다면, 그래 그렇다고 생각해도 좋다. 비열한, 기생충이어도 괜찮다. 최소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둘 수 있을 때에야, 그 떄에야 나의 말에 의미가 생기고 힘이 들어갈 수 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고, 그 어떤 말로도 합리화 할 수 없다. 세상은 단지 그뿐이다. 그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때에 춈스키를 만난건 행운이다. 조금 늦었지만, 한 3년 전에만 만났어도. 좋았겠지 싶지만, 그래도 행운은 행운이다. 그래, 모든 건 태도, 자세의 문제다. 건강한 지식인이 되자..

숨, 고르기. 2010.11.06

그립다.

"그립다." 소리내어 말해 본다. 그 어린 시절의 한 없이 넓다란 놀이터, 그 곳에 숨겨둔 내 장난감들, 흙먼지로 숨 쉬고 해질녘 들리는 엄마 목소리가, 언젠가 어른이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아픈 사람도 도와주고 가난한 사람들도 보살피고 엄마랑 아빠랑 누나랑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게 꿈이 었던 그 날. 아빠가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 같이 밥을 먹고 그제서야 눈 꼽을 떼어가며 책가방을 싸고, 엄마가 소리를 질러야 세수를 하고 양치를 했던 그 시절에, 학교에 가면 한 명도 빠짐없이 친하게 지냈던 그 시절.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그립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고 신중하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사는 것...

숨, 고르기. 2010.09.29

변하고, 변하고.

흠, 누가 그랬지. 시간은 흐르는게 아니라고.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 그대로 가만히 있는데 저만치 멀어져버린 시간을 보면서는 잘 이해 되지 않지만, 생각이라는게, 그 법칙이라는게 참 웃긴 녀석이라 이렇기도 저렇기도 하다. 시간, 흠. 세월이 흐르든 흐르지 않던 나에게서 계속 멀어져가는 건 뭐라 설명해야 할까. 시간은, 세월을 앞질러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어쩌면 시간 따위 무시하고 살 수도 있겠지 너무 더디게 살아온 탓일까. 새삼, 내일이 두렵다. 내일이 온다는 것, 그 순간들을 견디어 내야만 한다는 것.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조롱당하는 나를 그대로 세워 둘 자신이 없는 거다. 거기에는 정말 내가 서 있는 걸까, 하긴 내가 아니면 누구랴 일단 너는 아니지 않는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

숨, 고르기. 2010.09.29

질문있습니다.

학창시절, 참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지싶다. 질문있습니다. 하고 손을 들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돌이켜보면, 사실 궁금한게 없었다기 보다는 눈에 띄기 싫었던 탓이 더 컸으리라. 물론, 주입식 교육의 한계가 어쩌네 하는 말도 일리있는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난 소심하니까. 나중에 혼자 찾아보는게 편했던거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질문하는 법을 모르는건 엄청난 문제라고 생각하게되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질문을 던진다는 행위는 철학함의 기본이니까, 어쩔 수 없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의 황당함이란! 평소에 그리도 흔하게 쓰던 낱말이 완전히 낯설어져, 이제는 그게 무엇인지 밝혀내야만 직성이 풀리게 되는. 그런 질문은 힘들지만, 당혹스럽지만,..

숨, 고르기. 2010.09.19

기억에 묻다.

꽤 최근,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심하게 다쳤다. 육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정신적인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내 이름 정도는 기억한다고 한다. 막상 얼굴을 보면 확실히 생각이 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왜 그럴까. 나는,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래 그냥 이렇게 잊혀지는 것도 좋은 수이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쓸데 없는 망상에 불과한 이러한 생각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도 생각해본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기억에 의존하는가. 그 기억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처럼 눈앞의 연인을 잊고 참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걸까. 인간에게 기억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관계를 맺는다. 관계에 들어서다. 관계 되어버렸다. 관계를 끊는다. 관..

숨, 고르기. 2010.09.04

망할,

아르바이트와 학업. 마지막 한 학기를 맞이 하며,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에 치이고 있다. 시간 활용은 완전한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어디가서 뭐라 말 할 일도 못 된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을 읽을 능력은 내게 없다. 하지만 졸린 몸을 어떻게든 가누며 일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피곤하지만, 일은 책을 읽을 때 만큼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짜여진 방식대로만 움직이면 그만이니까. 생각해보면, 이제 이런 일은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진게 젊은 몸뚱아리 밖에 없어서 밤을 새고 몸을 움직여 돈을 버는 이 짓거리는 그만 두는게 좋지 않을까. 뭔가를 머릿속에 더 넣어, 그걸 팔아먹고 사는게 좋지 않은가. 이대론 못 산다. 언제까지 젊을 수도 없거니와 언제까지 쫓기듯 살 ..

숨, 고르기. 2010.08.24

나는 당신이 싫다.

참을 수 없는 아니, 그보다 참고 싶지 않은. 그런 분노. 그 분노의 대상이 너무나 가까워, 그러지 않으마 하고. 매번, 다짐해야만 하는, 그런 분노. 어쩔 수 없음에, 몸 서리치며 그렇게 떨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눈물이 채 솟기도 전에 마저 삭혀버려야 하는 그런 분노. 우리가 '화'라고 부르는 그것은, 어디에도 쉴 곳이 없다. 끊임없이 타오르며 자신을 말라 죽이고야 마는, 분노. 그래서 남는 건 재 뿐이어서, 손 댈 수 없게 되어버리는. 마침내, 남겨진 고독을 목도 할 수 밖에 없는 분노는 이제, 그 바랄 곳을 잃었다. 언제쯤이면, 익숙해 질 수 있을런지. 나는 당신이 싫다.

숨, 고르기. 201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