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2009. 5. 18. 20:32 from 없는, 글.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닮은 것들을 찾아냈었다. 꽤 오랜 시간 함께했기 때문에 닮아온 부분이 아니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공통점들을 찾아냈다. 서로의 이름에 받침이 없다는 것.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4자리나 일치한다는 것. 즉흥적인 일을 벌이는 것. 아메리카노만 마신다는 것. 비가 오면 동동주에 파전을 먹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눈물에 약하다는 것. 그랬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눈물에 약했다. 작은 싸움은 서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큰 싸움으로 번진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애써 눈물을 참아가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예상치 못한 네 눈물은 이제 막 열리려던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입뿐만 아니라 생각마저도 멈추게 만들었다. 나는 네가 눈물을 흘릴 때면 내 존재가 너무나 하찮게 느껴져 괴로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비참해, 그래서 힘들었다. 그리고 그 때 역시 네 눈물이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네 눈물이 흐르는 것을 애써 모르는 척했지만,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니 네 볼을 타고 흐르는 그 눈물을 너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너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무엇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을까. 사실 지금에 와서도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상하기로는 스스로가 비참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너는 그 때의 그 상황이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불편했다는 기억만 오래 간직 할 정도로 힘든 날이었지만 말이다. 순간, 네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마 눈물이 흘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리라. 꺽어 질 듯 고개를 숙인 너는 아무 말 없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커피스틱은 빨대가 아니라며 양손으로 컵을 들어 마시던 네가 그 커피스틱을 빨대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어...? 네 손에 반지가 없다.

재떨이의 담배연기도, 네 아메리카노에서도 더 이상 연기가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움직이던 네 눈물도 말라버린 지금. 길거리에서 들려오던 소란스런 소리마저, 모든 게 멈춰버렸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그 순간부터 네가 눈물을 보인 그 순간까지 나는 이 상황, 조금은 힘들긴 해도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갑작스런 혼란은 나를 짓눌렀다. 생각이고 뭐고, 난 그렇게 멈춰서 있었다. 네가 화장실을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흔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그대로 계속 멈춰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담배를 물었다. 이렇게 피워대다간 당장 내일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았지만 할 수 없었다. 손이 떨려와 세 번이나 라이터를 놓치고 나서야 불을 붙였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 이건 정말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선 안 되는 일. 어느 때보다, 담배연기를 깊이 들여 마신다. 더, 더 깊이... 연기를 내뱉을 때 다 함께 쓸려나가게 제발. 부탁한다.

너는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화장을 고친 걸까 아까보다 환해진 얼굴, 이제 만족하는 걸까. 자리에 앉자마자 너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인다. 그 사진, 내가 처음으로 찍어준 사진이다. 장롱에 있던 필름카메라를 고쳐 처음으로 찍은 사진. 필름 한통에서 유일하게 건진 한 장, 프레임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네 얼굴. 내민 사진 뒤로 보이는 장난치듯 웃고 있는 너.

“이건 도저히 못 버리겠더라...”

Posted by nara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