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그녀

2009. 5. 16. 01:23 from 없는, 글.

 

모든 것은 한순간에 변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깨닫는 것은 한순간이다. 난 그와의 인연이 다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같은 사람이 어느 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에게 다가오는가에 대한 문제다. 익숙했던 침묵은 불편해졌고 빛나던 우리도 더 이상 빛나지 않게 된다.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 내가 그대로라고 생각했지만 그대로가 아니었고 그대로이길 바란 그대도 어느 순간 변해있더라.


아직 쌀쌀하지만 조금씩 따듯해져가는 그 즈음이었다. 겨울 외투들이 하나 둘 옷장으로 기어들어가고 새로 꺼낸 화사한 색들의 옷이 어울리는 그런 날. 하지만 그런 따듯함이 나에게는 그저 답답한 공기로만 느껴지는 그런 날. 우리는 카페테라스에 앉아있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좀 추웠다. 난 더운 건 잘 참지만 추운 건 못 참는데, 그런 일을 신경 써 자리 잡을 만큼 나는 제정신은 아니었던 듯싶다. 가슴은 답답하고 앞에 앉은 남자도 답답하고 불편해서 우리의 과거마저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남자, 나랑 비슷하게 느끼고 있나보다. 연신 담배만 피워대는걸 보니, 날 질식시켜 죽일 셈인가보다.

얼마 전 우리는 전화통화를 통해 이별을 말했다. 그리고 서로 받아드리는 듯해 보였다. 사실 얼굴을 보지 않고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겠느냐만, 그냥 그도 그럴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별에도 의식은 필요하다.

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를 하고 있는 시간보다는 대화 없이 마주한 시간에 머리는 빠르게 돌아간다. 그간 함께했던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가다가 감정들이 지나간다. 우린 분명 사랑했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었겠는가,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남자, 그 때 그 남자 맞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갈 때 난 모든 허무 속에서 내 과거를 잃지 않기 위해 움켜쥔다. 그리고 내 앞에 과거이자 과거가 될 현재가 앉아있다. 우리는 마주 하지만 서로를 응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나눈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 같아 슬프다.

나는 변화가 싫다. 무언가 변해서 이전의 것이 사라지는 것이 싫다. 조금씩 변한 그대도 싫고, 변한다고 느끼는 나도 싫었다. 그런 참을 수 없는 마음은 끝내 행위로 나타나, 나는 쇼핑을 하고 치장을 한다. 변화가 싫어서 나에게 변화를 주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우스운가.

우리의 모든 시작이 끝을 동반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찬란한 시작은 그 사실마저 망각하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그리고 누구나 대부분 비슷하게 저지르는 실수를 범한다. 나 역시 그중 하나다. 끝없이 반짝이기를 원했고 늘 특별하기를 원했다. 내 앞에 앉은 이 남자가 나에게 보여준, 아니 그는 보여주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봐버린 그 모습을 계속해서 강요하고, 다른 모습을 봄으로 내 사랑이 끝날까 두려웠다. 다시 한 번 물어야겠다. 내가 한 것은 사랑이었을까?

그가 일곱 번째 담배를 입에 문다. 그도 나와 비슷할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겠지. 다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말할 수 있을까? 나와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리고 슬프다. 너무나 익숙했던 모든 것이 낯설어버리는 지금이 너무너무 슬프다.




written by. 신아



Posted by narapark :